하얀 까마귀는 말했다
「너는 선택받았습니다
―“종말”의 시간까지,
세상의 태엽을 감으십시오」
첫 번째 종말은 순식간이었다, 네게 작별 인사조차 하지 못했다
열 번째 종말은 괴로웠다, 우리들은 운명에 저항하려 했다
백 번째 종말은 하찮았다, 그저 감흥 없는 일상이었다
천 번째 종말은 황홀했다, 사람들은 내게 희생을 빌었다
수 차례의 종말은 허무했다, 누군가 나를 비웃은 것 같았다
몇 번째 종말인가, 나는 어느새 세는 것을 그만두었다
내가 너였을 적을 기억하고 있니?
태엽을 버리면 악몽에서 깨어날 수 있는데
아니, 나는 세상을 저버리는 짓은 못 해
―"종말"까지 나는 필요하니까
내가 너였을 적을 기억하고 있니?
태엽을 버리면 악몽에서 달아날 수 있는데
단지, 나는 진실에서 눈을 돌리고 싶었던 거다
―“나 따위 사라져도, 세상은 전혀 변하지 않아”
검은 까마귀는 말했다
「너는 선택받지 못했습니다
―“종말”의 시간까지,
그저 가만히 기다리시길」
나를 속이려는 까마귀를 죽이고 이렇게 말했다
아니야, 세상은, 수십억의 목숨은 내게 달려 있다고!
나는 까마귀를 깊숙이 묻고 그 말을 잊으려 했지만
그의 눈동자는 먼 옛날에 동경했던 무언가를 빼닮아 있었다
내가 너였을 적을 기억하고 있니?
태엽을 버리면 악몽에서 깨어날 수 있는데
아니, 나는 세상을 저버리는 짓은 못 해
―"종말"까지 나는 필요하니까
내가 너였을 적을 기억하고 있니?
태엽을 버리면 악몽에서 달아날 수 있는데
단지, 나는 진실에서 눈을 돌리고 싶었던 거다
―"나 따위 사라져도, 세상은 전혀 변하지 않아"
어느 쪽 까마귀가 옳았을까 태엽을 버리고, 악몽에선 깨어났니?
"종말"의 정체란 무엇이던 걸까, 까마귀는 나였다
―아니, 너였나?